대규모 전쟁은 대부분 세계경제의 판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그동안 세계경제를 주도해 온 영국 경제는 위축되고 미국이 새로운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인 미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약 150년간 고수해 오던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탈피하고 이름자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 아래 막강한 산업 경쟁력과 경제력을 과시하였다. 2차 대전 후 20년간 미국은 자체 경제력의 절대적 우위를 배경으로 범세계적 자유경제 체제를 형성시켜갔다. 대규모 전쟁을 통해 미국은 다량의 금을 확보하였고, 그로 인해 경제력이 강해지면서 달러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축통화가 되게 된 것이다.
미국은 IMF, 세계은행 및 GATT 를 포함하는 이른바 '브레튼우드' 기구와 OECD 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1944년 출범한 브레튼우드 체제는 금, 달러 본위제와 고정환율제를 골격으로 하는 국제통화 체제이다. 브레튼우드 체제는 달러화를 일정량의 금에 고정하고 항시 금과 교환이 가능하며 달러화에 대해 각국 통화의 환율을 고정하는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했다. 이것은 미국 경제와 달러화에 대한 절대적인 신임을 전제로 했을 때 가능한 체제이다. 국제금융질서도 미국 주도의 IMF 체제하에서 1960년대 초에는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외환자유화 조치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60년대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또 한 차례의 국제경제질서에 변화가 일어났다. 장기간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의 경제력은 약화되는 반면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실질적 수혜자였던 일본과 함께 독일 등 유럽 각국들이 미국의 경제 지배력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전쟁과 냉전 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자 유럽으로 자본이 유출되었고 미국의 자본수지는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1968년 브레튼우드 체제의 기본이 되는 금과 달러화 가치의 안정성 유지가 어렵게 되면서 고정환율제도의 유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급기야 1971년 8월 닉슨 행정부가 달러화의 금태환 정지를 일방적으로 선언하여 1971년 12월에 '스미소니언 협정' 을 채택하면서 마르크화, 엔화의 평가절상과 달러화의 평가절하 등이 단행되었다. 특히 베트남전 패배 이후 제4차 중동전의 계기가 된 1차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경제적 지위가 약화된 미국이 70년대 중반 이후 소위 '신보호무역주의' 로 선회하여 미국 자신이 만든 국제무역질서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결국 1976년 변동환율제를 공식 인정하는 '킹스턴 체제' 를 출범시킴에 따라 미국이 주도한 브레튼우드 체제는 완전히 붕괴되었다.